한 대학 캠퍼스 한 부스에서 주인공인 '애비'에게 가족계획연맹을 알고 있냐며 영화는 이야기가 시작된다.
애비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. 때문에 가족계획 연맹에서 일할 때의 사명감 역시 남다르다.
또한 낙태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능력 역시 출중하고 그에 따른 인정도 받는다. 가족계획연맹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,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된다. 그녀는 이야기한다. 왜 그때 그곳에 가게 되었을까? 수년간 일했지만 그곳에 도움을 받은 적 없던 그녀가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한다.
그만큼 인정하기 어렵지 않았나 싶다.
신념과 진실사이
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. 애비가 그렇지 않았나 싶다. 가족들이 그동안 그렇게 반대해왔던 그 일을 그녀는 신념과 본인의 사명감으로 일해왔다. 하지만 찰나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그동안의 신념과 사명감은 어디로든 없어지고 말았다.
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와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애비처럼 할 수 있을까? 그렇지 않다.
함께 일해왔던 사람들과 맞은편에 선다는 것과 본인이 낙태에 일조했다는 것 두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려운데 그녀는 직접 실행하였다. 법정에 서고 또, 철창 넘어 상담을 받으러 가는 여성들을 설득했다.
마주한 진실을 외면한 채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도 있겠다. 하지만, 애비는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. 그랬기 때문에 영화화될 수 있었던 것 같다. 그녀 자체가 입체적인 사람인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.
낙태 경험자일 때 설득하는 애비와 생명을 수호하게 될 때 설득하는 애비는 무언가 다르다. 믿고 있는 신념이 무너졌는데도 어떻게 더 진실되게 설득을 할 수 있었을까? 그건 아마도 기본적으로 내면 깊숙히 가지고 있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단단한 뿌리가 자리 잡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. 소장으로서 설득하는 애비는 기로에 선 여성들을 위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.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당사자들이 해야 할 선택을 애비가 하나씩 하고 있었는데 반해, 생명을 수호할 때는 조금더 여성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. 지금 기분이 어떨지,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. 진실을 만난 순간, 인지하지 못했던 다른 신념이 나타났던 것 같다.
호불호가 갈릴 영화
직접 보기 전에는 기대를 무척이나 했던 언플랜드였다. 우연히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을 들었고 실제로 검색해 보니, 평점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.
하지만 언플랜드는 낙태라는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애비에 너무 기대어 있지 않나 싶다. 낙태를 두고 이분법처럼 옳다 그르다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다. 개인적으로는 낙태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더 강조되어 전달되었으면 어땠을까 싶다. 더불어서 영화 초반에 나오는 적나라한 낙태의 현장은 상당히 당혹스럽다. 물론 덕분에 더 몰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긴 하다. 애비처럼 충격적인 상태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. 그래도 여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.
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한 번쯤 낙태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다.
실화를 바탕으로 한 화제작
애비역을 맡은 애슐리 브래처의 연기가 몰입을 할 수 있게 했다. 주인공 자체가 입체적이라 웃다 가고 울고 좌절에 빠진 모습, 희망을 발견하는 모습 등등 다양한 감정이 필요할 듯한데 그녀의 연기에서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.
상대역인 로비아스캇은 꼭 필요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. 로비아스캇이 맡았던 셰릴이야말로 본인 신념에 갇혀 그 신념이 옳다고 믿고 그대로 행하는데 초반의 애비와도 닮아 있어 나중에 애비와 상반된 모습이 되었을 때 흑과 백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. 이 역시 로비아스캇의 연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. 언플랜드는 사실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였지만 실화를 무기로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화제임을 입증했다고 한다. 실제로 영화 개봉 후 미국의 9개 주에서는 반대 법안이 도입되었고 언플랜드의 애비처럼 본인이 종사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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